
인간은 수억 년 동안 발열과 함께 감염에 대응해 왔다. 그런데 불과 140여 년 전부터 우리는 이 생리적 반응을 약물로 쉽게 억제하기 시작했다.
자폐스펙트럼장애(ASD)의 유병률이 지난 수십 년 동안 크게 증가한 데에는 진단기준 확대, 인식 증가, 조기검진과 의료 접근성 향상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크게 달라진 생물학적 환경 역시 ASD 증가에 일부 영향을 미쳤는지는 여전히 연구해야 할 문제다.
앞선 글에서 나는 산업화 이후 크게 증가한 당류 섭취와 모체의 대사환경 변화에 주목했다. 이번에는 또 하나의 역사적 변화인 ‘발열을 약물로 억제하는 행동의 대중화’에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현재까지 반복적인 해열제 사용이 ASD를 증가시킨다는 것을 입증한 장기 전향적 연구는 없다. 따라서 이 글은 “해열제가 자폐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아니다.
내가 제기하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수억 년 동안 감염과 함께 작동해 온 발열이라는 생리적 신호를 면역계와 뇌가 빠르게 발달하는 영유아기에 반복적으로 억제하면 장기적인 면역 및 신경면역계의 프로그래밍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질문 자체를 직접 검증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이 가설을 구성하는 각각의 생물학적 연결고리에는 주목할 만한 연구들이 존재한다.
해열제로 열을 쉽게 내리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최근의 일이다
버드나무 껍질의 salicylate나 quinine처럼 발열을 낮추기 위한 물질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그러나 값싸고 표준화된 합성 해열제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일이다. 1880년대에는 phenazone(antipyrine), acetanilide(Antifebrin), phenacetin 등 합성 해열진통제가 잇따라 등장했고, 1899년에는 aspirin이 상업화되었다.[1] 20세기 중반 이후 acetaminophen(paracetamol), 이후 ibuprofen이 널리 보급되면서 해열제는 특별한 의료행위가 아니라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약물이 되었다.
그 변화의 규모를 보여주는 한 사례가 있다. 1983년 미국 Houston의 influenza season에 조사된 발열 아동 103명 중 14%는 aspirin, 61%는 acetaminophen, 20%는 두 약물을 모두 복용했다. 즉 이 특정 조사에서는 약 95%의 발열 아동이 해열진통제에 노출되어 있었다.[2]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도 이른바 ‘fever phobia’를 지적해 왔다. 일부 조사에서는 보호자의 약 25%가 37.8°C 미만에서도 해열제를 투여하겠다고 답했고, 85%는 해열제를 주기 위해 잠든 아이를 깨운다고 응답했다.[3]
19세기와 현대의 해열제 사용량을 직접 비교할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변화는 분명하다.
합성 해열제 등장 이전의 인류와 현대의 인류는 감염과 발열을 경험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쉽게 억제하고 있는 발열은 원래 무엇을 하는 생리현상일까?
발열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6억 년 이상 보존된 면역 프로그램이다
발열은 흔히 감염 때문에 생기는 불편한 증상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 면역학에서 발열은 훨씬 적극적인 생리적 반응이다. Evans 등이 2015년 Nature Reviews Immunology에 발표한 리뷰에 따르면 발열은 냉혈·온혈 척추동물에서 6억 년 이상 진화적으로 보존되어 온 숙주 방어반응(host-defense response)이다.[4]
발열 때 올라가는 체온 자체도 하나의 생물학적 신호다. 발열 범위의 온도는 사이토카인 신호전달, 림프구 이동, 면역감시 등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의 여러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2019년 Immunity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발열 범위의 온도가 T세포의 HSP90–α4 integrin pathway를 활성화하여 T세포의 이동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동물모델에서 이 경로를 방해하자 T세포 이동뿐 아니라 세균 제거 능력도 감소했다.[5]
즉 감염 과정은 단순히 병원체와 면역세포의 싸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해열제로 체온 상승을 반복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단순히 불편함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감염 과정에서 면역계가 경험하는 생리적 신호의 일부를 변화시키는 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
면역계는 경험을 후생유전학적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trained immunity, 즉 선천면역기억이다.
과거에는 면역기억이 B세포와 T세포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monocyte와 macrophage 같은 선천면역세포 역시 과거의 감염과 환경적 자극에 따라 이후의 반응방식이 장기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Netea 등은 이러한 trained immunity의 중요한 기전으로 후생유전학적 재프로그래밍(epigenetic reprogramming)을 제시한다.[6] DNA 염기서열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염색질 접근성(chromatin accessibility), 히스톤 변형(histone modification), 대사 프로그램 등이 변화하면서 이후 같은 자극을 받았을 때 면역세포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Saeed 등이 2014년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도 monocyte가 macrophage로 분화하고 trained 또는 tolerized state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enhancer와 promoter에 광범위한 후생유전학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7]
쉽게 말하면 감염은 끝나도 면역계는 그 경험을 완전히 잊지 않을 수 있다. 영유아기는 이러한 면역계가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다. 그렇다면 감염과 함께 진화해 온 발열이라는 thermal signal도 이 면역 학습 과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는가? 현재 “영유아기의 반복적인 발열 억제가 trained immunity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직접 입증한 연구는 없다. 이 부분은 아직 가설이다. 그러나 초기 환경자극이 면역계에 장기적인 후생유전학적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반복적인 발열 억제의 장기적 영향을 연구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이 문제는 뇌의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와도 연결된다
뇌에는 microglia(미세아교세포)라는 고유의 면역세포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주로 염증이 생겼을 때 활성화되는 세포로 생각했지만, 현재는 정상적인 뇌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aolicelli 등이 2011년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microglia가 발달 중인 뇌에서 synaptic material을 제거하면서 출생 후 시냅스 가지치기(postnatal synaptic pruning)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8]
이어 Zhan 등의 Nature Neuroscience 연구에서는 생쥐에서 neuron–microglia signaling을 교란했을 때 초기 시냅스 성숙에 이상이 나타났고 이후 뇌의 functional connectivity와 사회적 행동에도 변화가 관찰되었다.[9]
물론 이러한 동물실험이 인간 ASD의 발생기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발달 중인 뇌의 면역환경이 신경회로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Microglia는 시냅스 가지치기와 신경회로 성숙에 참여한다. 따라서 영유아기의 면역 프로그래밍이 장기간 달라질 경우 그것이 neuroimmune maturation과 뇌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ASD 연구에서도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해열제는 면역학적으로 완전히 중립적일까?
이 질문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인간 임상시험이 있다.
2009년 Lancet에 발표된 무작위대조시험에서는 459명의 건강한 영아에게 예방접종 직후 paracetamol을 예방적으로 투여한 군과 투여하지 않은 군을 비교했다.[10] Paracetamol은 예상대로 발열을 감소시켰다. 그런데 동시에 여러 백신 항원에 대한 항체기하평균농도도 낮아졌다. 이후 13개의 RCT, 총 5,077명의 소아를 분석한 systematic review에서도 예방적 해열제 투여가 일부 백신 항원에 대한 항체반응을 낮추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다만 대부분의 항체 수준은 여전히 방어 가능한 범위에 있었다.[11]
이 결과가 “해열제가 면역계를 손상시킨다”는 뜻은 아니다. 예방접종 때 예방적으로 해열제를 사용하는 것과 감염으로 열이 난 아이에게 해열제를 사용하는 것도 동일한 상황이 아니다.
다만 이 연구는 적어도 특정 조건에서는 해열제 투여와 함께 측정 가능한 면역반응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세트아미노펜과 DNA 메틸화라는 또 하나의 단서
후생유전학적으로 더 직접적인 연구도 있다. 2019년 Addo 등은 임신 중 acetaminophen 사용과 태반의 DNA methylation을 분석했다.[12] ELGAN cohort의 태반에서 acetaminophen 노출과 관련된 여러 DNA methylation 차이가 관찰되었으며, PTGDR(prostaglandin D2 receptor) 관련 CpG site도 주요 신호 가운데 하나였다. 2017년 Gervin 등의 연구에서도 장기간 prenatal paracetamol exposure가 있었고 ADHD를 진단받은 아동에서 DNA methylation 차이가 보고되었다.[13]
그러나 이 결과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후속 연구에서는 이러한 methylation 차이가 일관되게 재현되지 않았으며,[14] 무엇보다 이 연구들은
라는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않았다.
현재 말할 수 있는 정확한 수준은 acetaminophen 노출과 DNA methylation 차이의 연관성을 보고한 연구가 존재하지만, 이것이 ASD를 유발하는 후생유전학적 기전으로 확립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결과는 특정 해열제 노출이 발달 과정에서 후생유전학적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사건인지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해열제 사용 증가가 ASD 증가의 원인일까?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반드시 함께 보아야 할 중요한 반대 근거가 있다. 2024년 JAMA에 발표된 약 248만 명의 스웨덴 아동 연구에서는 일반적인 분석에서 prenatal acetaminophen exposure와 ASD 사이에 작은 연관성이 관찰되었지만, 가족·유전적 요인을 보다 강하게 통제하는 sibling-control analysis에서는 그 연관성이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다(HR 0.98, 95% CI 0.93–1.04).[15] 또한 2023년 25개 무작위대조시험을 분석한 systematic review에서도 급성 호흡기 감염에서 해열제가 질병기간을 유의하게 늘리거나 줄인다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16]
따라서 acetaminophen 자체가 ASD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의 근거로는 타당하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필요하다. ‘acetaminophen이라는 특정 약물이 ASD를 유발하는가?’와 ‘영유아기에 반복적으로 발열이라는 생리적 신호를 억제하는 것이 장기적인 면역·신경면역 프로그래밍을 변화시키는가?’는 같은 질문이 아니다.
Ibuprofen 역시 발열을 낮추지만 acetaminophen과 동일한 대사경로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는 특정 약물의 독립적인 약리작용과 fever suppression 자체의 장기적인 발달 효과를 분리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아직 하지 않은 연구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발열은 수억 년 동안 보존된 숙주 방어반응이다. 발열 범위의 온도 자체가 면역세포의 이동과 신호전달에 영향을 미친다. 선천면역계는 경험에 따라 후생유전학적으로 장기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 Microglia는 출생 후 시냅스 가지치기와 신경회로 성숙에 참여한다. 특정 상황에서 예방적 paracetamol 투여는 일부 항체반응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일부 연구에서는 prenatal acetaminophen exposure와 DNA methylation 차이도 관찰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들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연결하는 연구는 아직 없다.
라는 전체 경로를 출생부터 장기간 추적한 인간 전향적 연구가 필요하다.
내가 제기하는 것은 ‘해열제 자폐 원인론’이 아니다. 내가 제기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생후 첫 수년 동안 반복적으로 발열을 억제하는 것이 발달 중인 면역계와 신경면역계의 프로그래밍을 변화시키고, 유전적·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일부 아동에서 ASD susceptibility를 높이는 하나의 환경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는가?
현재 과학은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특정한 developmental hypothesis를 직접 검증한 장기 연구도 아직 부족하다. 따라서 “반복적인 fever suppression이 ASD 증가에 기여하는 후생유전학적 환경요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결론이 아니라 가설이다. 하지만 발열의 진화생물학, trained immunity, 후생유전학, microglia의 발달 기능, 그리고 해열제의 면역학적 효과에 관한 연구들을 종합하면 직접 검증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가설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연구에서는 단순히 “acetaminophen을 사용했는가?”만 조사해서는 부족하다. 감염과 발열의 횟수, 체온과 지속시간, 해열제 투여 시점과 누적 횟수, acetaminophen과 ibuprofen의 차이, 면역세포의 DNA methylation과 histone modification, trained immunity markers, 그리고 이후의 신경발달을 출생부터 함께 추적해야 한다.
그러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우리는 인류가 지난 140여 년 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바꾸어 온 ‘발열을 경험하는 방식’이 발달 중인 면역계와 뇌에 어떤 장기적인 의미를 갖는지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Brune K. The early history of non-opioid analgesics. Acute Pain. 1997;1(1):33–40. DOI: 10.1016/S1366-0071(97)80033-2.
[2] Taylor JP, Gustafson TL, Johnson CC, et al. Antipyretic Use Among Children During the 1983 Influenza Season. Am J Dis Child. 1985;139(5):486–488. DOI: 10.1001/archpedi.1985.02140070060034. PMID: 3984974.
[3] Sullivan JE, Farrar HC. Fever and Antipyretic Use in Children. Pediatrics. 2011;127(3):580–587. DOI: 10.1542/peds.2010-3852. PMID: 21357332.
[4] Evans SS, Repasky EA, Fisher DT. Fever and the thermal regulation of immunity: the immune system feels the heat. Nat Rev Immunol. 2015;15:335–349. DOI: 10.1038/nri3843. PMID: 25976513.
[5] Lin C, Zhang Y, Zhang K, et al. Fever Promotes T Lymphocyte Trafficking via a Thermal Sensory Pathway Involving Heat Shock Protein 90 and α4 Integrins. Immunity. 2019;50:137–151.e6. DOI: 10.1016/j.immuni.2018.11.013. PMID: 30650373.
[6] Netea MG, Domínguez-Andrés J, Barreiro LB, et al. Defining trained immunity and its role in health and disease. Nat Rev Immunol. 2020;20:375–388. DOI: 10.1038/s41577-020-0285-6.
[7] Saeed S, Quintin J, Kerstens HHD, et al. Epigenetic programming of monocyte-to-macrophage differentiation and trained innate immunity. Science. 2014;345:1251086. DOI: 10.1126/science.1251086. PMID: 25258085.
[8] Paolicelli RC, Bolasco G, Pagani F, et al. Synaptic pruning by microglia is necessary for normal brain development. Science. 2011;333:1456–1458. DOI: 10.1126/science.1202529. PMID: 21778362.
[9] Zhan Y, Paolicelli RC, Sforazzini F, et al. Deficient neuron-microglia signaling results in impaired functional brain connectivity and social behavior. Nat Neurosci. 2014;17:400–406. DOI: 10.1038/nn.3641. PMID: 24487234.
[10] Prymula R, Siegrist CA, Chlibek R, et al. Effect of prophylactic paracetamol administration at time of vaccination on febrile reactions and antibody responses in children. Lancet. 2009;374:1339–1350. DOI: 10.1016/S0140-6736(09)61208-3. PMID: 19837254.
[11] Das RR, Panigrahi I, Naik SS. The effect of prophylactic antipyretic administration on post-vaccination adverse reactions and antibody response in children: a systematic review. PLoS One. 2014;9. DOI: 10.1371/journal.pone.0106629. PMID: 25180516.
[12] Addo KA, Bulka CM, Dhingra R, et al. Acetaminophen use during pregnancy and DNA methylation in the placenta of the extremely low gestational age newborn (ELGAN) cohort. Environ Epigenet. 2019;5. DOI: 10.1093/eep/dvz010. PMID: 3140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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