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혼자 하는 놀이가 길어질 때 확인할 것
- 놀이의 발달 순서와 아이가 멈추는 지점
- 아이의 관심사를 놀이의 출발점으로 삼는 방법
- 관심사 안에 사람의 자리를 만들기
- 관심사에 사건을 넣어 이야기로 확장하기
- 관심사를 함께하는 활동으로 옮기기
- 처음 4주 동안의 진행 순서
- 놀이가 막혔을 때 쓰는 방법
- 규칙 있는 놀이와 지는 경험을 다루는 법
- 진전을 확인하는 방법과 통합적인 관점
- F.A.Q
아스퍼거 놀이 방법의 출발점은 새로운 놀잇감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지금 어느 놀이 단계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보다 한 칸 앞의 과제를 놀이 안에 심어 주는 일입니다. 순서를 건너뛴 놀이는 아이에게 학습으로 느껴지고, 학습으로 느껴진 놀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스퍼거 특성을 가진 아이들의 놀이에는 공통된 인상이 있습니다. 혼자 할 때는 놀랄 만큼 정교하고 오래 몰두하는데, 누군가 끼어드는 순간 그 세계가 닫힙니다. 블록으로 도시를 짓고 노선도를 외워 그리며 도감의 순서를 그대로 재현하지만, 그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혼자 하는 놀이에서 함께하는 놀이로 넘어가는 길을 발달 순서에 따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아이의 관심사를 없애지 않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는 방법, 처음 몇 주 동안 무엇부터 손대야 하는지, 놀이가 막혔을 때 쓰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함께 담았습니다.
혼자 하는 놀이가 길어질 때 확인할 것
놀이는 즐거움의 활동인 동시에 발달의 작업장입니다. 놀이 안에서 아이는 순서를 지키고 상대의 의도를 짐작하며 자기 계획을 수정하는 연습을 반복하는데, 이 연습은 대화 학습지나 규칙 설명으로는 대체되기 어렵습니다.
아스퍼거 특성을 가진 아동의 놀이에서 자주 관찰되는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놀이의 목적이 결과물에 있다는 점입니다. 완성된 구조물이나 정확한 재현이 목표가 되면 함께 노는 사람은 방해 요소가 됩니다. 두 번째는 규칙의 절대화입니다. 자신이 정한 방식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놀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세 번째는 상징 놀이의 얕은 확장입니다. 역할 놀이를 하더라도 장면이 늘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고 줄거리가 뻗어 나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판단이 하나 필요합니다. 아이가 혼자 노는 이유가 함께 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인지, 함께 노는 것이 힘들어서 피하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입니다. 전자라면 방법을 알려 주는 개입이 유효하고, 후자라면 부담을 낮추는 조정이 먼저입니다. 두 경우에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후자의 아이는 놀이 자체를 더 회피하게 됩니다.
구분의 단서는 아이의 반응에 있습니다. 어른이 놀이에 합류했을 때 처음에는 밀어내다가도 점차 자리를 내주고 지시를 하기 시작한다면 방법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굳고 놀이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다른 방으로 옮겨 간다면 부담의 문제로 보고 접근의 강도를 낮추셔야 합니다.
부모님들께서 자주 하시는 걱정 가운데 하나는 아이가 혼자 노는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혼자 몰두하는 시간에는 안정과 회복의 기능이 있으므로 그 시간을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하루의 놀이 시간 전체를 상호작용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구간에만 사람이 들어가고 나머지는 아이의 몫으로 남겨 두는 구성이 대체로 무리가 없습니다.
또 하나 살펴볼 것은 놀이의 시간대입니다. 하루의 감각 부담이 누적된 하교 직후에는 어떤 아이라도 상호작용의 여력이 낮습니다. 같은 아이가 주말 오전에는 훨씬 열려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므로, 시도의 성패를 판단하기 전에 시간대를 두세 가지로 바꾸어 보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놀이의 발달 순서와 아이가 멈추는 지점
놀이는 일정한 순서를 따라 형태를 바꾸어 갑니다. 아래 표는 그 흐름과, 아스퍼거 특성을 가진 아동이 각 단계에서 자주 정체되는 지점, 그리고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다리를 정리한 것입니다.
| 놀이 단계 | 이 단계의 놀이 모습 | 자주 관찰되는 정체 | 다음 단계로 가는 다리 |
|---|---|---|---|
| 감각 탐색 놀이 | 만지고 흔들고 소리를 내며 감각을 확인 | 특정 감각만 반복하고 다른 감각은 거부 | 아이가 좋아하는 감각에 사람을 끼워 넣기 |
| 기능 놀이 | 사물을 용도대로 사용하는 놀이 | 순서와 배열에 집착해 사용이 멈춤 | 배열이 완성된 뒤 그것을 쓰는 장면 만들기 |
| 구성 놀이 | 블록·퍼즐로 무언가를 만들어 냄 | 혼자 완성하는 데 목적이 집중됨 | 재료를 나누어 갖고 하나를 함께 짓기 |
| 상징 놀이 | 인형·역할에 의미를 부여하는 놀이 | 같은 장면이 대사까지 그대로 반복됨 | 인물에게 예상 밖의 사건을 하나 넣기 |
| 규칙 놀이 | 정해진 규칙 아래 승패를 겨루는 놀이 | 지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놀이가 끝남 | 협동형 게임으로 승패의 대상을 바꾸기 |
| 사회극 놀이 | 여럿이 역할을 나누어 이야기를 만듦 | 자기 역할만 수행하고 조율이 어려움 | 두 사람이 한 역할을 함께 맡아 보기 |
표의 순서를 나이로 환산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아스퍼거 특성을 가진 아동은 어느 한 단계에 오래 머물면서도 다른 단계의 요소를 이미 갖추고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초등학생이 상징 놀이 단계의 확장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동시에 규칙 놀이의 규칙 이해에서는 또래를 앞서기도 합니다.
시작 지점을 고르실 때는 아이가 지금 가장 자주 하는 놀이의 형태를 기준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그 형태 안에서 사람이 들어갈 자리를 하나 만드는 것이 첫 목표이고, 형태 자체를 바꾸는 일은 그다음입니다. 순서를 바꾸면 아이는 좋아하던 놀이를 빼앗겼다고 느낍니다.
오른쪽 열의 다리들에는 공통 원리가 있습니다. 아이가 이미 하고 있는 놀이의 구조를 유지한 채, 그 안에 상대가 필요한 조건을 하나만 추가한다는 것입니다. 조건을 두 개 이상 한꺼번에 넣으면 놀이가 무너지고, 아이는 개입을 방해로 기억하게 됩니다.
각 단계에서 정체가 나타나는 이유도 조금씩 다릅니다. 기능 놀이 단계에서 배열에 집착하는 모습은 대체로 예측 가능한 상태를 만들려는 시도이며, 불안이 높은 시기에 더 뚜렷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징 놀이의 반복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정서 어휘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고, 규칙 놀이의 중단은 대개 승패를 자기 가치와 연결해 해석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정체의 이유가 다르면 필요한 다리도 달라지므로, 같은 개입이 통하지 않을 때는 아이가 그 단계에서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를 먼저 살펴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단계를 확인하실 때 유용한 관찰 질문이 몇 가지 있습니다. 놀이에 다른 사람이 등장하는가, 사물이 원래 용도와 다른 의미로 쓰이는가, 놀이의 내용이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가, 그리고 놀이가 중간에 예상 밖으로 흘러갔을 때 아이가 그것을 견디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 네 가지에 대한 답이 아이가 지금 서 있는 지점을 대체로 알려 줍니다.
아이의 관심사를 놀이의 출발점으로 삼는 방법
특별한 관심사는 줄여야 할 문제가 아니라 놀이를 열 수 있는 가장 넓은 통로입니다. 아이가 그 주제에서만큼은 능동적이고 유창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심사를 무대로 삼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관심사 안에 사람의 자리를 만들기
첫 단계는 주제를 바꾸지 않고 역할만 추가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기차 노선을 그리고 있다면 어른은 승객이 되고, 공룡 도감을 보고 있다면 그 공룡을 처음 보는 탐험가가 됩니다. 어른이 아이의 지식을 시험하거나 정정하는 위치에 서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때 어른이 맡을 역할은 아이보다 아는 것이 적은 쪽이 좋습니다. 설명할 상대가 생기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말차례를 조절하고 상대의 이해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화의 조율을 연습하는 실제 상황이 됩니다. 다만 모르는 척이 지나치면 아이가 답답해하므로, 절반쯤 아는 상태에서 궁금해하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관심사에 사건을 넣어 이야기로 확장하기
두 번째 방법은 정보의 나열을 이야기로 바꾸는 것입니다. 노선도를 다 그린 뒤에 "이 역에서 사람이 우산을 놓고 내렸대"라고 사건을 하나 넣으면, 아이는 그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자기 지식 밖의 판단을 해야 합니다.
사건은 작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큰 사건은 아이가 감당하기 어렵고 규칙 밖의 상황으로 느껴져 거부됩니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 시간이 조금 늦어지는 일, 두 사람이 같은 자리를 원하는 일처럼 해결 가능한 크기의 문제가 적당합니다. 이런 사건은 상징 놀이의 줄거리를 늘리는 동시에 문제 해결의 연습이 됩니다.
관심사를 함께하는 활동으로 옮기기
세 번째는 놀이의 형태 자체를 협력이 필요한 구조로 바꾸는 것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로 퀴즈를 만들어 서로 내기, 도감을 보고 그림을 나누어 그리기, 관심 있는 장소를 함께 찾아가 사진을 찍고 정리하기 같은 활동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단계에서 어른이 지켜야 할 선은 결과물의 완성도에 개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의 분류 기준이 어른의 눈에 부정확해 보여도 그대로 두시면, 아이는 그 활동이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배웁니다. 협력의 경험이 쌓이면 결과물에 대한 아이의 집착도 서서히 느슨해지는 경향이 관찰됩니다.
관심사가 좁고 고정적이어서 확장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제를 넓히려 하기보다 그 주제 안에서 형식을 바꾸는 방법이 잘 통합니다. 지하철에만 관심이 있는 아이라면 노선도 그리기에서 시작해 역 이름 맞히기 게임, 종이로 만드는 승차권, 가족을 승객으로 삼는 역할 놀이, 실제 노선을 타고 가 보는 나들이로 형식을 옮겨 갈 수 있습니다. 주제는 하나여도 그 안에서 요구되는 능력은 매번 달라지며, 아이 입장에서는 안전한 영역에 머문 채로 새로운 과제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 4주 동안의 진행 순서
무엇부터 시작할지 막막하실 때 참고하실 수 있도록, 초기 4주 동안의 진행 방식을 단계로 정리해 드립니다. 하루 15분에서 20분 정도를 기준으로 삼되, 아이의 상태에 따라 시간을 줄이셔도 무방합니다.
| 주차 | 이 주의 목표 | 어른이 하는 일 | 하지 않는 일 |
|---|---|---|---|
| 1주차 | 방해하지 않는 관찰자로 자리 잡기 | 아이 옆에 앉아 하는 일을 소리 내어 서술 | 질문하기, 놀이 제안하기 |
| 2주차 | 놀이 안에 어른의 자리 만들기 | 아이가 허락하는 만큼 역할 하나 맡기 | 규칙 바꾸기, 더 좋은 방법 알려 주기 |
| 3주차 | 주고받는 횟수 늘리기 | 아이의 행동에 반응을 붙여 고리를 잇기 | 아이의 오류 정정하기 |
| 4주차 | 작은 변수를 하나 넣어 보기 | 해결 가능한 사건을 놀이 안에 제시 | 여러 도전을 연속으로 넣기 |
1주차의 서술은 생각보다 힘이 큽니다. "빨간 블록을 위에 올렸네", "이번엔 다른 색을 골랐구나"처럼 아이의 행동을 중계하듯 말해 주면, 아이는 자신이 관찰되고 있으나 평가받지는 않는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질문이 없는 대화는 아이에게 안전한 상태로 인식됩니다.
3주차의 고리 잇기는 상호작용의 밀도를 결정하는 항목입니다. 아이가 자동차를 밀면 어른이 다른 자동차로 그 옆을 지나가고, 아이가 반응하면 다시 이어 가는 식으로 주고받음의 횟수 자체를 목표로 삼습니다. 한 번의 놀이에서 이 고리가 몇 번 이어졌는지를 세어 보시면 진전이 눈에 보입니다.
2주차에서 어른의 자리를 만들 때는 허락을 구하는 절차를 넣으시면 저항이 줄어듭니다. 말없이 끼어들기보다 "나도 하나 만들어 봐도 될까"라고 묻고, 거절당하면 물러났다가 잠시 뒤 다시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거절을 받아들이는 어른의 모습 자체가 아이에게는 안전의 신호가 되며, 몇 차례 반복되면 허락의 빈도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의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규칙적인 반복입니다. 매일 40분을 하다가 일주일 뒤 그만두는 것보다, 15분씩 두 달을 이어 가는 편이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방식으로 시작하면 아이도 그 시간을 예측하게 되고, 예측 가능한 일과는 그 자체로 참여의 문턱을 낮춥니다.
4주가 지난 뒤에도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경우 대체로 도전의 크기가 아이의 현재 상태보다 컸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 단계 뒤로 물러나 다시 시작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조정이며, 이 조정을 반복하는 과정 자체가 놀이 개입의 실제 모습입니다.
놀이가 막혔을 때 쓰는 방법
놀이 중에 흐름이 끊기는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그때 어떤 한 수를 두느냐에 따라 놀이가 이어지기도 하고 그대로 끝나기도 합니다. 자주 나오는 장면과 대응을 정리했습니다.
| 놀이 중 장면 | 아이의 상태 | 어른의 다음 한 수 |
|---|---|---|
| 같은 배열을 몇 번이고 반복함 | 안정을 얻는 중이거나 다음 수를 모름 | 배열 옆에 다른 배열을 만들어 나란히 두기 |
| 어른이 만지면 화를 냄 | 자기 계획이 훼손된다고 느낌 | 손대지 않고 재료를 건네는 역할만 맡기 |
| 놀이를 지시로만 진행함 | 상호작용보다 통제가 편안함 | 지시를 따르되 한 가지만 다르게 해 보기 |
| 갑자기 다른 주제로 옮겨 감 | 부담이 커졌다는 신호일 수 있음 | 옮겨 간 주제를 그대로 따라가기 |
| 이겨야만 놀이를 계속함 | 승패가 자기 가치와 연결되어 있음 | 승패가 없는 협동 과제로 형태를 전환 |
| 어른의 제안마다 안 된다고 함 |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저항 | 제안 대신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 |
표에 없는 장면을 만나셨을 때도 판단의 기준은 같습니다. 지금 놀이를 유지하는 것과 새로운 요구를 넣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그 자리에서 정하시면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유지가 우선이며, 놀이가 끊기지 않고 이어진 시간 자체가 다음 시도의 밑천이 됩니다.
표의 대응에는 한 가지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아이의 저항을 꺾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보로 읽는다는 것입니다. 안 된다는 말은 대체로 지금은 그만큼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며, 그 신호를 존중하면 다음 시도의 성공률이 올라갑니다.
지시로만 놀이를 진행하려는 아이의 경우가 특히 자주 문의를 받는 상황입니다. 어른이 계속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상호작용이 아니라 조종이 되지만, 지시를 거부하면 놀이가 끝나 버립니다. 절충안은 지시의 큰 틀은 따르되 세부에서 아주 작은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빨간 차를 여기 두라고 하면 두되 방향을 조금 다르게 놓아 보는 식이며, 아이가 그 차이를 발견하고 반응하는 순간이 새로운 주고받음의 시작점이 됩니다.
규칙 있는 놀이와 지는 경험을 다루는 법
보드게임이나 카드 게임처럼 승패가 걸린 놀이는 아스퍼거 특성을 가진 아이에게 큰 벽이 됩니다. 규칙 자체는 오히려 잘 이해하고 엄격하게 지키지만, 지는 순간의 정서 반응을 감당하기 어려워 놀이가 자주 중단됩니다.
접근의 순서를 잡아 두면 부담이 줄어듭니다. 먼저 승패가 없는 협동형 게임으로 시작해 함께 목표를 달성하는 경험을 쌓고, 그다음 운의 비중이 큰 게임으로 넘어갑니다. 주사위처럼 실력과 무관한 요소가 결과를 정하면 패배가 자기 능력에 대한 평가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결과를 좌우하는 게임은 가장 마지막에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지는 상황을 다루는 연습도 놀이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졌을 때 할 말과 행동을 미리 정해 두는 방법이 흔히 쓰입니다. 재미있었다고 말하기, 카드를 정리하기처럼 구체적인 행동을 정해 두면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도 실행할 것이 남아 있어 무너짐이 줄어듭니다. 어른이 졌을 때 같은 행동을 먼저 보여 주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패배 직후의 대응도 미리 정해 두시면 도움이 됩니다. 아이가 무너진 순간에 왜 그 정도로 화를 내느냐고 묻거나 게임일 뿐이라고 말하면 대체로 상황이 악화됩니다. 그 순간에는 말을 줄이고 정리할 시간을 준 뒤, 진정된 다음에 어느 대목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는지를 물어보는 순서가 안정적입니다. 아이가 자기 반응의 이유를 언어로 정리해 보는 경험이 쌓이면 다음번의 폭이 조금씩 줄어드는 경우가 관찰됩니다.
승패를 잠시 옆에 두는 변형도 유용합니다. 점수를 두 사람의 합계로 계산해 지난번 기록을 넘기는 방식이나, 규칙을 아이와 함께 새로 만드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규칙을 만드는 과정은 규칙이 협상 가능한 약속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며, 이 경험은 학교의 또래 놀이에서 규칙 변경을 견디는 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전을 확인하는 방법과 통합적인 관점
놀이의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기록이 필요합니다. 매일 길게 적을 필요는 없고, 놀이가 끝난 뒤 세 줄 정도만 남겨 두셔도 몇 주 뒤의 비교가 가능해집니다.
오늘 주고받음이 이어진 횟수와 가장 길게 이어진 구간
아이가 먼저 제안하거나 어른을 부른 순간이 있었는지
놀이가 끊긴 지점과 그 직전에 있었던 일
이 세 항목만으로도 흐름이 드러납니다. 특히 두 번째 항목, 아이가 먼저 개시한 횟수는 상호작용의 발달을 보여 주는 지표로 자주 활용됩니다. 어른이 열심히 반응하는 것과 아이가 먼저 다가오는 것은 전혀 다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진전은 대체로 계단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몇 주 동안 아무 변화가 없다가 어느 시점에 갑자기 새로운 행동이 나타나고, 다시 한동안 평평한 구간이 이어집니다. 평평한 구간에서 방법을 자꾸 바꾸면 아이가 적응할 시간을 잃게 되므로, 최소 3~4주는 같은 방식을 유지한 뒤 판단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놀이가 잘 진행되지 않는 시기에는 놀이 밖의 조건을 함께 살피셔야 합니다. 수면이 부족하거나 배가 자주 아픈 상태, 감각 예민성이 높아진 시기에는 상호작용에 쓸 여력 자체가 줄어듭니다. 아이토마토 한의원에서 놀이와 상호작용을 다룰 때 몸의 상태를 함께 확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며, 닥터토마토 프로토콜은 한약과 식이요법, 영양제 요법, 항생 요법의 네 축으로 신체 조건을 다루고 교육학적 축으로 플로어타임을 두는 구조를 갖습니다.
플로어타임은 그린스판 박사가 정립한 접근으로, 아이가 이끌고 어른이 따라가는 방식으로 정서적 상호작용의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을 원리로 삼습니다. 김문주 원장의 저서 『자폐 아동을 위한 플로어타임 프로그램』과 『고기능 자폐·ADHD 아이를 위한 플로어타임 가이드』에는 가정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사례와 함께 서술되어 있으며, 아이토마토 한의원에서는 화상 회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플로어타임 홈스쿨을 통해 부모 코칭이 이루어집니다.
놀이를 시작하시는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전해 드리고 싶은 것은 목표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분 동안 아이와 세 번 눈이 마주치고 두 번 주고받았다면 그날의 놀이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것입니다. 놀이는 성과를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관계의 재료를 쌓아 두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F.A.Q
장난감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는 것이 좋나요?
혼자 완결되는 구조보다 두 사람이 나누어 맡을 수 있는 형태가 상호작용을 만들기에 유리하며, 재료가 여러 개로 나뉘는 물건이 그런 조건에 해당합니다. 자동으로 작동하며 소리와 빛이 나는 제품은 아이의 주의를 물건 쪽으로 고정시켜 사람이 낄 자리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 사기보다 집에 있는 물건 중 나누어 쓸 수 있는 것을 골라 쓰는 편이 대체로 실용적입니다.
영상이나 게임만 하려고 할 때는 어떻게 접근하나요?
화면 앞의 시간을 없애는 방향보다, 그 안에서 함께하는 구간을 만드는 접근이 저항이 적습니다. 같은 화면을 옆에서 보며 반응을 주고받거나, 아이가 하는 게임의 진행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이 시작점이 됩니다. 화면을 끄고 나서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 두면 전환에서 생기는 갈등도 함께 줄어듭니다.
부모가 놀이를 잘 못한다고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놀이의 기술보다 예측 가능한 반복이 더 큰 역할을 하므로, 서툴러도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함께하는 편이 결과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아이가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방법이 언제나 유효한 출발점이 됩니다. 부모가 즐겁지 않은 놀이는 아이에게도 전달되므로 서로 견딜 만한 활동을 고르는 것도 기준의 하나입니다.
또래와의 놀이는 언제부터 시도해 볼 수 있나요?
어른과의 주고받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아이가 먼저 개시하는 장면이 늘어난 시점이 대체로 적절한 출발선으로 여겨집니다. 처음에는 한 명의 친구와 짧은 시간, 구조가 분명한 활동으로 시작하는 방식이 성공률이 높습니다. 어른이 옆에서 상황을 통역해 주는 역할을 맡되 개입의 빈도는 점차 줄여 가는 형태가 흔히 쓰입니다.
형제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진행하나요?
세 사람이 함께하는 놀이는 조율의 난도가 크게 올라가므로, 처음에는 각자와 따로 시간을 갖고 이후에 합치는 순서가 안정적입니다. 함께할 때는 역할과 차례를 눈에 보이게 정해 두면 다툼이 줄어들며, 형제 중 한 명이 심판이나 진행자를 맡는 구성도 활용됩니다. 두 아이의 발달 단계가 다르다면 각자에게 다른 난이도의 과제를 주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춥니다.
훈육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루어야 하나요?
안전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기보다 시간을 분리해 다루는 편이 일반적으로 권해집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평가받는 자리로 기억되면 이후의 참여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짚어야 할 사안은 상황이 정리된 뒤 별도의 시간에 한 가지만 짧게 언급하는 방식이 흔히 쓰입니다.
참고자료
김문주, 『자폐 아동을 위한 플로어타임 프로그램』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40379
김문주, 『고기능 자폐·ADHD 아이를 위한 플로어타임 가이드』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40492
아이토마토 한의원 – https://i-tomato.co.kr/
글쓴이
김문주 원장(한의사)은 연세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와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Neurology에 게재된 자폐 통합치료 관찰 연구의 저자입니다. 『자폐, 이겨낼 수 있어』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프로필: https://i-tomato.co.kr/dr-tomato-kim-moon-ju/
※ 본 콘텐츠는 자폐스펙트럼장애·ADHD·틱장애 등 소아신경정신질환에 대한 일반적인 의학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치료 효과를 보장하거나 개별 환자의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개인별 증상과 치료 경과는 상이할 수 있으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 계획은 반드시 전문 의료인과의 상담을 통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 본문에 인용된 치료 개념·임상 경과·통계 등은 김문주 원장의 저서 및 국제학술지 게재 관찰 연구(Frontiers in Neurology, 2023)에서 보고된 내용이며, 본원의 효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 최종 의료 검토일: 2026-07-31 (김문주 원장, 한의사)
가정에서 놀이를 진행하시다가 방향을 잡기 어려우실 때는 플로어타임 홈스쿨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담실 https://i-tomato.co.kr/inquiry/ 와 카카오톡 상담 http://pf.kakao.com/_HxosqX/chat, 대표전화 02-2649-1140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